'폭풍의 언덕'에 가려진 세 자매의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운명

입력 2024-03-12 18:55   수정 2024-03-13 00:35


소설, 영화, 드라마, 수많은 매체에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대다. 그 시작에는 38세에 요절한 한 소설가가 쓴 <제인 에어>가 있다.

<제인 에어>는 최초의 여성 성장 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. 이 소설을 쓴 샬럿 브론테는 당시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피하고자 ‘커러 벨’이라는 중성적인 느낌의 필명으로 <제인 에어>를 발표했다. 나중에 이 소설이 여성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국 문학계에 큰 파장이 일어나기도 했다.

큰 성공을 거둔 <제인 에어>의 이면에는 두 여동생, 에밀리와 앤이 있었다. 세 자매 모두 시와 소설을 쓴 문학가였다. 이 셋은 공동으로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.

특히 에밀리 브론테가 유일하게 쓴 소설 <폭풍의 언덕>은 출판 당시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았지만 후대에 들어 고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. 안타깝게도 그는 작품이 인정받기 전 30세의 나이에 요절했다. 막냇동생 앤 브론테 역시 <애그니스 그레이> <와일드펠 홀의 소유주>를 발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29세 나이에 사망했다. 두 어린 동생의 죽음을 지켜본 샬럿 브론테 역시 3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.

19세기 영국의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항해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지만 요절한 세 자매. 뮤지컬 ‘브론테’는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그들의 삶을 무대로 가져왔다.

가부장적인 사회를 문학을 통해 살아가려는 자매라는 소재가 매력적이다. 이 이야기를 여성 주연 배우 3명이 풀어내는 점도 신선하고 차별화되는 지점이다. 세 자매를 연기한 강지혜, 이지연, 이아진이 각 인물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연기를 펼쳐 생명을 불어넣는다.

무대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세션 음악도 생동감 있다. 특히 세 자매가 각자 글을 쓰는 장면이 인물의 심리에 맞춘 음악이 인상적이다. 샬럿이 분노에 가득 차 종이를 휘갈기는 장면에서 격정적인 드럼 연주가 강렬한 비트를 내뿜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. 다만 극중 음악 소리에 대사가 가려지는 장면들이 있어 조금은 아쉬움이 느껴진다.

매력적인 인물들의 삶을 더 풍성한 서사로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. 맏언니 샬럿과 둘째 에밀리 사이의 예술관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 작품을 끌고 간다.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소재가 등장하지만 밋밋하게 그려져 극적인 효과가 부족했다. 이 밖에 다양한 층위의 고민이나 내적 갈등이 더해진다면 더 입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.

이런 면에서 앤이 두 언니 사이에 갈등을 조절하는 중재자 역할에 국한돼 아쉽다. 앤의 죽음이 별다른 설명이나 연출 없이 무대 뒤로 사라지는 방식으로 그려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.

브론테 자매의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운명이 매력적인 작품. <제인 에어>와 <폭풍의 언덕>을 읽고 감상하면 작품을 더욱 절절하게 즐길 수 있다. 공연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오는 6월 2일까지.

구교범 기자 gugyobeom@hankyung.com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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